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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우린

    (@doil0504)

제목:달이 들려주는 한 이야기

 

이것은 이제 진실을 알 수 없는 이야기.

 

한 나라가 있었다.낮에는 태양을,밤에는 달을 머금고 반짝이는 호수와 그 호수를 담은 숲,아름다운 백조들은 이 나라의 자랑이었다.또한 예부터 타누마가(家)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던 이 나라는 작지만 강한,평화로운 나라였다.그리고 이 나라를 다스릴 차기 후계자로 선택된 이는 타누마 카나메였다.착한 그의 심성이 나라를 잘 다스릴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그는 착하다 못해 물렀다.타누마에게 왕궁이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절벽,헤어나올 수 없는 늪과도 같았다.자신과 소중한 사람의 목숨이 위협당하는 일은 다반수였고 사람들의 기대감은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그래서 어느 날,그는 도망쳤다.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 늦은 밤,타누마는 왕궁을 벗어나 숲으로 달아났다.숨이 턱 끝까지 찰 때까지 달린 그의 앞에 책으로만 보았던 호수가 보였다.그리고 그가 목격한 것은 한 아이였다.

호수에 있는 그 아이는 달빛을 받고 자란 듯한 은빛머리에 숲을 담은 듯한 녹안을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반짝이는 흰 피부를 가진 그 아이의 등에는 백색의 큰 날개가 일순 돋아나있다가 사라졌다.기묘하고 아름다운 그 아이의 얼굴에는 슬픔과 쓸쓸함이 가득하였다.타누마를 보고 놀라 도망가려는 그 아이를 멈춘 것은 타누마의 다정한 목소리였다.

 

“저기,잠깐만….!!안녕,이 시간에 왜 이 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난 카나메라고 해.타누마 카나메.네 이름은 뭔지 알려줄 수 있을까…?”

 

타누마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멈춰서서 조용히 그를 바라보던 아이는 금새 슬픔을 얼굴에서 지우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안녕.난….나는 나츠메라고 해.그런데,타누마,너야말로 여기에 있으면 위험해.이 숲에는 아주 무서운 마법사가 살거든.그러니 어서 돌아가는 게 좋아.”

 

일순 나츠메의 표정에서 곤란함이 묻어났지만,이름을 애기해주며 웃는 그에게 타누마는 많은 것을 묻지 못하고 그저 다음에 또 만나러 와도 되냐는 질문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타누마는 나츠메를 만나러 갔다.그것이 그의 유일한 즐거움이 되었다.대화를 할때 나츠메가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극히 드물었지만,타누마는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많은 것을 질문했다가는 나츠메가 떠날 것이라는,그것은 분명 본능적인 불안이었다.

그렇기에 타누마는 나츠메를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런 그의 행동들이 다른 이들에게 점점 이상하게 비춰지고 있었다.그리고 이상한 소문이 세간에 돌게 되었다.

 

차기 왕의 후계자는 밤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다.그리고 그가 만나는 자는 죄를 저질러 저주받은 인간이다.

 

그런 소문이 돌게 되자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된 왕궁에서는 한 마법사를 불러 숲을 조사하게 하였다.타누마가 마법사를 만났을 때 그 마법사는 웃으며 말하였다.

“안녕하십니까?이번에 숲을 조사하게 된 마토바 세이지라고 합니다.별 거 없겠지만……아,숲에 들어가신다는 소문이 있던데…..그 숲에는 안 들어가시는 게 좋아요.인간을 홀리는 백조가 있거든요.방해꾼이 있어서 잡지 못 했지만……걱정 마세요.금방 붙잡을 테니.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기분 나쁜 웃음에 타누마는 왜인지 나츠메가 걱정되었다.타누마는 급하게 궁을 빠져나가 나츠메에게 마법사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뛰어갔다.그리고 도착한 호수에는 이미 마토바가 서 있었고,그의 앞의 그물에는 한 마리의 백조가 붙잡혀 있었다.

 

“오야?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역시 카나메님께서 숲에 들어가신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보군요.혹 ‘나츠메’라는 아이를 만나러오신건가요?

 

“당신이……나츠메를 어떻게 알고 있죠?당신은 나츠메를,나츠메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건가요?”

 

타누마의 질문에 미소를 짓고 마토바는 백조를 가리키며 말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백조이지 않습니까?선명한 녹안에 큰 날개가…....아,잠시 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만….들어주시겠습니까?”

 

타누마는 백조를 쳐다보다가 마토바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마토바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말이죠,예전부터 강한 힘을 얻고 싶었습니다.그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만….그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더군요.저는…..목적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겁낼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설령 제 목적이 누군가를,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버려도 말이죠.”

 

타누마의 머리 속에서 그의 기억 조각들이 마토바에 의해 맞춰지기 시작했다.어째서 나츠메의 등에 날개가 돋아나 있는 것을 몇 번이나 목격했는지,숲에 사는 마법사는,사람을 홀리는 백조의 소문은 무엇인지,수많은 질문들 속에서 그가 확실히 알아낸 것은 단 한가지였다.

 

소문의 숲에 사는 저주받은 인간은 나츠메이다.저주의 내용은…..

 

타누마는 순식간에 사색이 되어 백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당신의 말은…..이 백조가…..바로 나츠메….이렇게까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서까지 얻고 싶은 게 뭡니까?마토바!!”

 

“말하지 않았습니까.그저 힘이라고.그 힘을 위해서는 나츠메군의 눈물이 필요했습니다만…..저주인지,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아서 슬픔이나 쓸쓸함을 알게 된다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싶었는데…먼저 사랑을 가르쳐 줄 걸 그랬나봅니다.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절대적이니까요.”

“그게 무슨….말…..윽…!!”

 

타누마의 옷이 붉게 물들고 주저앉은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밤이 되어 어두워진 하늘과 웃고 있는 마토바,큰 날개를 감추지 않고 그물에서 벗어나 울먹이는 나츠메였다.

 

“아….타누..타누마….미안,미안해.그냥 너를 향한 감정이,마음이 너를 위험하게 할 줄은 몰랐어.내가 평범하게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면…너를 위험하게 하지 않았을까….?어째서…어째서 나는 눈물을 흘릴 수가 없을까….”

 

타누마는 나츠메의 뺨을 만지며 웃었다.나츠메에게 지금 울고 있다고,눈물이 흐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눈이 감기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그렇게 눈을 감았던 타누마가 눈을 뜬 것은 며칠 후의 일이었다.눈을 뜬 타누마 앞에는 나츠메와 처음 보는 남자가 있었다.어지 된 일인지 알 수 없는 타누마를 안으며 나츠메가 말했다.

 

“타누마!!다행이다….정말 다행이야…여기 계신 분은 또 다른 마법사이신 나토리 슈이치씨라고 해.너를…너를 살려주셨어…!!내 저주도….풀렸어….이제 얼른 궁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타누마.모두 너를 걱정할테니…..”

 

처음으로 활짝 웃는 나츠메를 보며 타누마는 말했다.

 

“저주가 풀렸다니 다행이다,나츠메.궁으로 돌아가는 건 괜찮아,대신에 우리 떠나자.반짝이는 호수도,숲도 아름답지만 너와 함께 더 아름다운 장소를 찾고 싶어.나와 함께 가주지 않을래?”

 

타누마의 말에 나츠메는 이제는 흘릴 수 있는 눈물을 기쁨을 담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둘의 이야기가 끝났다.

 

 

이것은 이제 진실을 알 수 없는 이야기.그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검은 머리카락과 은빛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 두 명이서 동화보다 더 아름다운 곳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뿐이다.

         ​아침님

  (@xundaymorning)

    나츠메 우인장, 동화 합작 물거품

    아침, @xundaymorning

 

  나에게 ‘바깥’은 동화 속에 나오는 환상 속 장소, 혹은 전설에나 나올법한 신비스러운 곳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릴 때부터 자기 전 어머니가 읽어주는 이야기에 나오는 그곳은 늘, 따스한 햇살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고, 밤이 되어도 모든 게 빛으로 가득하다는 둥 본 적 없는 모습에 대한 말 뿐이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은 적이 있었다. 어릴 때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 무서워서 잠을 못 이루기도 했지만, 지금은 흐리게 남은 장면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내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어머니는 더 이상 내 방에 오시지 않았고, 바깥에 대한 이야기 또한 해주시지 않았다. 대신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오셨다. ‘바깥’에서 데리고 온 아이라고. 나는 그 이상으로 질문을 던지지 않았고, 어머니 또한 이야기를 꺼내시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새하얀 고양이에게 나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며칠 함께 지내본 결과, 나비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본 적 없는 곳에서 이 아이는 살아온 것이 아닌가. 자기 전이면 나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내뱉었다.

 

  “정말 바깥에는 괴물이 있을까?”

  “…….”

  “가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다같이.”

 

  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던 나비는 내 손등에 제 얼굴을 부빈 뒤 몸을 만 채 잠이 들었다. 아주 잠깐 마주한 것이었지만, 어둠 속에서도 새까만 눈동자는 소름끼칠 만큼 선명했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던 것일까.

 

  이곳의 낮은 저 멀리에서 아득한 빛이 일렁였고, 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이 전부였다. 밖으로 나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가득했지만 이상하게도 쉽게 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괴물에게 먹힐 수도 있다는 말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움직여지지 않는 걸까? 언젠가 이런 생각도 해보았지만 끝내 우스운 생각이라며 넘겨버리고는 했다. 지금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넘어갈 정도로 순진한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갈 수 없는 건 왜일까. 몇 번이고 밖으로 향하는 문 앞까지 다가갔지만 문고리를 돌린 적은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구태여 이 일상을 깰 이유도 없었다. 혹시 모를 커다란 변화가 생기는 것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지금의 일상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 또한 아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없는 한, 절대로.

 

  여전히 나는 일렁이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답지 않은 생각을 했다고 자조적으로 웃으며.

깨닫지 못하던 걸 어느 순간 자각하게 되면 자꾸 신경이 쓰인다고 했던가. 이상하다. 투명한 물에 풀어진 물감처럼 서서히 진해지고 있었다.

 

  “타카시.”

  “…….”

  “……타카시?”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나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뒤에서 걱정이 담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는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시며 말을 이어가셨다.

 

  “얘도, 참. 오늘 네 생일이잖니. 잊고 있던 거야? 나비도 축하해주려고 아침부터 찾아왔는데.”

 

  짧게 고개를 주억인 후 벽에 걸린 달력에 시선을 두었다. 7월. 그리고 1일에 붉은색 동그라미로 표시가 되어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건가. 다시 시선을 어머니에게로 향했을 때는, 환한 미소와 함께 포근하게 안아주셨다. 바깥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했던 머릿속은 도화지에 물을 쏟아버린 것처럼 흐리게 번져갔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는 다시 밤이었고, 곁에는 나비가 몸을 둥글게 만 채 잠이 들어있었다.

 

  “언제 이렇게……”

 

  느리게 몸을 일으켜 습관처럼 창밖을 바라보았고, 창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이 아니잖아.”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릴 정도로 눈이 부셨다. 이정도로 빛을 만끽했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하다. 정말,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마른침을 삼키고 바깥을 제대로 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었다.

 

  “…….”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빛이다. 낮이어야만 겨우 볼 수 있던 자그마한 빛이 아닌, 바로 눈앞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에 압도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내게 나비가 천천히 다가왔다. 나비의 머리가 손에 닿자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는 그 아이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애초에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음에도 하지 못하는 이처럼 보였다. 너는 내가 모르고 있던 걸 정말 보고 있었던 거야? 너는, 전부 알고 있던 거야?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쉬이 입술이 열리지 않았다.

 

  빛의 근원지는 하얗고 둥근 형태를 띠었고, 손을 뻗는다면 금세 쥘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이질적이다. 온통 본 적 없는 풍경에, 믿을 수 없는 것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알 수 없는 기분에 몸이 잘게 떨려왔다. 만약 이곳이 ‘바깥’이라면 어릴 적 어머니가 말하던 이야기는 거짓말이 될 터였다.

 

  ‘나츠메.’

 

  아. 머릿속에 여러 장면이 스쳐가자 갑작스레 통증이 몰려왔다. 경험한 적이 없을뿐더러 꿈에도 나오지 않은 장면들이다.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입술을 꾹 물었다.

 

  ‘만약 네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세상이 크게 흔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야가 어지러웠다. 목소리의 주인에게 나를 아냐 묻고 싶었지만 실체가 없는 환청에 물어봤자 어쩌겠는가. 눈과 귀를 틀어막은 채 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지만 목소리는 계속해서 스며들었다.

 

  ‘……몇 번이고 그 바다에서 너를 찾아내마.’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에는 짙은 슬픔이 담겨있었다. 사내의 말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얼굴도 모르는 이와, 나를 찾아내겠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그리고 가장 이상하다고 느낀 건,

 

  “바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 비단 빛만이 아니었다. 그 밑에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파도치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거짓말.”

 

  거짓말 같았다. 몇 번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음에도 쉬이 발이 떼어지지 않던 그곳을, 단단히 결심을 하지 않고서야 갈 수 없는 미지의 세계 같던 그곳을, 너무나도 쉽게 와버렸다. 그리고 영영 나오지 못할 것만 같던 그 바다에서, 아무렇지 않게 도망쳐버렸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어디로 가는 게 옳아?

 

  커다란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위협적으로 파도가 다가오고 있었다. 도망쳐야 하는데. 머리로는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나비는, 나비는 어떻게 해야 좋지. 다급하게 바깥을 살피자,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살지 않을까.

 

  “……살아야 해. 꼭 지켜줄게.”

  “…….”

 

  표정 변화 없이 나를 바라보던 나비는 작게 울음소리를 내었고 나는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파도가 닥쳐왔다. 숨이 차오르는 것을 참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지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

 

  품에서 나비를 놓았다. 서서히 가라앉는 나와 달리 빛이 있는 곳으로 떠오르는 나비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다행이다.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새까만 눈동자는 끝까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슬퍼 보였던 건 착각이었을까?

  온통 어둠뿐이었다. 죽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라고 느껴졌다. 나비는 안전하게 돌아갔을까. 갑자기 내가 사라져서 어머니는 당황하셨을 텐데. 문득 스쳐가는 여러 생각에 후회도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먼 훗날에는 지금보다 더 후회하고, 슬퍼하겠지만 우선은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니까. 죽는 것도 별 일이 아닌 건가. 아프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겁도 나지 않았다. 차라리 이대로 영영 잠에 드는 것도 괜찮을 텐데……

 

  “저기요.”

  “……?”

  “이제야 일어났네. 몸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

 

  눈을 뜨자 어둠이 거둬지고 빛과 함께 보이는 건 낯선 사내였다. 상황 판단이 잘 되지 않아 멍한 표정을 짓자, 그것을 눈치 챈 건지 사내는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소개부터 했어야 했나. 내 이름은 나토리 슈이치예요. 아침에 산책 나갔었다가 모래사장에서 그 쪽을 발견해서 데리고 온 거고.”

  “네?”

 

  나토리 슈이치라는 남자의 말에 나도 모르게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없었다. 방 안 그 어느 곳에도 나비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제가 있는 곳 주변에서 고양이 못 보셨어요?”

  “……고양이?”

  “하얀 털에 갈색 얼룩이 있는 애인데……”

 

  그는 내 말에 짐짓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저었다.

 

  “못 본 것 같은데. 혹시 키우던 고양이예요?”

  “…….”

 

  지켜주겠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한 걸까? 새어나오는 눈물을 참으려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

 

  “그…… 미안해요. 조금 더 제대로 살펴볼 걸 그랬나.”

  “……괜찮아요. 나토리 씨가 잘못한 일도 아닌 걸요.”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내뱉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숨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토리 씨는 말없이 그저 내 등을 토닥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바깥으로 나와 처음 만난 이가 나토리 씨라는 게 다행이었던 걸까. 아니면 정말 어머니의 말이 거짓말이었던 걸까.

 

  그의 집에서 대략 일주일 정도 지냈을 즈음, 나는 꽤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었다. 그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이곳을 찾은 건 한 달 정도 휴가를 냈기 때문이라고 했다―꽤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과, 내가 살고 있던 곳이 바다 밑, 아주 깊은 곳이었다는 것이다. 가끔 바닷가로 나가 물에 들어갔을 때, 일렁이는 모습이 내가 창밖으로 보던 풍경과 동일했으므로. 오히려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보니 그곳에서의 생활이 꿈만 같다. 아주 긴 꿈에서 깬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몇 번 정도 그에게 그곳에서의 생활을 이야기 해볼까도 싶었지만, 처음 만났던 그 날 내게 물었던 건 이름과 나이가 전부였으므로 궁금해 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믿지 않는다면 역효과가 날 게 뻔했고. 온통 알지 못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진 바깥은 새로움 그 자체였다. 이야기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눈부시고, 안전한 곳이었다.

 

  나토리 씨는 이제 곧 떠나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대강 얼버무려 해결했다고 하지만, 이후 계획에 대해서는 하나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무작정 다시 바다에 빠진다고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이곳에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츠메.”

  “……네?”

  “네가 괜찮다면, 떠날 때까지 우리 집에서 지내도 되는데. 어떻게 생각해?”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그런지, 곧장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렵다면 천천히 말해줘도 돼.”

  “…….”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나비도 찾지 못했는데, 이대로 떠나도 되는 걸까. 훌쩍 떠나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었으나, 그 아이를 찾지 못한 채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자꾸만 아파왔다. 곧장 내일이다. 내일이면 이 곳을 떠나야 하고,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걷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처음 바깥으로 나왔을 때처럼 새하얀 빛을 내뿜는 달을―그것이 달이라는 건 나토리 씨가 말해준 것이었다―가로등 삼아 모래사장을 걸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빛은 눈물이 흐를 정도로 눈부셨고, 누군가 심장을 칼로 난도질하는 것처럼 아팠다.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에는 사박사박, 모래를 밟는 내 걸음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나토리 씨의 별장이 점처럼 보일 정도로 멀리 와버렸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다시 돌아가야 할 텐데. 다시 몸을 돌려 반대로 걸어가려던 순간, 나비가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눈물이 흐르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곧장 달려가 나비를 안아들었다. 다행이야.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나는 네가……”

 

  죽었을까봐, 다시 볼 수 없을까봐 무서웠어. 뒷말은 내뱉지 못한 채 꾹꾹 눌러 담았다.

 

  손에서 벗어나려는 듯 앞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나비의 모습에, 천천히 내려놓아주자 나비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눈을 얇게 뜬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머지않아 내 앞에 있던 나비는 온데간데없이, 늑대를 닮은 거대한 생물체가 서 있었다.

 

  숲의 규모가 작은 편이기도 했지만, 이 숲의 절반 정도는 거뜬히 채울 정도로 큰 생물이었다. 괴물이라고 칭하기에는 아름다운 생김새였으므로,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은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숙인 채 느릿하게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쓰다듬어 달라는 건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머리를 가벼이 쓰다듬었다. 이전에도 여러 번 이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익숙한 감촉이었다. 꽤 오랜 시간 그렇게 멈춰 있었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나츠메.”

  “……?”

 

  낯선 듯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쪽이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 늑대를 닮은 무언가가 짧게 고갯짓을 했다.

 

  “몇 번이나 골치 아프게 할 거냐. 더 이상 바다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말고.”

  “……너 뭐야?”

 

  질문을 던졌음에도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독한 녀석이니까, 이번에 다시 잡히면 이제는 나도 손 쓸 수 없을 거다.”

  “네 말만 하지 말고 내 말에도 대답 좀 해줘. 무슨 소리야?”

  “시간이 얼마 없어.”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의 몸에서 다시 한 번 새하얀 빛이 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빛이 빠져나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옅은 파도 소리와 함께 물거품도 함께 피어올랐다.

 

  “잠깐……”

  “잘 있어라, 나츠메.”

 

  절반 정도 희미해졌을 즈음, 그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힘없이 통과할 뿐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멈추지 않는 눈물로 인해 흐릿한 시야 너머로 한 장면이 스쳐갔다. 모르고 있던 게 아니야. 내가 누구였고, 누구와 함께였는지, 전부, 전부 기억하고 있었는데……

 

  “……선생!”

  “이제야 기억한 거냐.”

 

  옅은 웃음 뒤로 흘러오는 목소리마저 희미해졌다.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해야 할 말이, 해주고 싶은 말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가지 마. 대체, 어째서……”

  “내가 선택한 일이니 네가 후회할 이유는 없잖냐.”

  “너를 구하는 대가로, 처음 만난 이후로 1년 동안 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물거품이 되기로 했으니까.”

  “잠깐……”

  “그동안 즐거웠다.”

 

  선생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난 후였다. 잊고 있던 모든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다시 지나쳤고, 그대로 주저앉아 목 놓아 울음을 쏟아냈다. 이만큼 울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울었다. 네가 ‘나비’가 아닌 ‘마다라’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네 진짜 이름도 말해주지 못한 채 다 끝나버렸다.

 

  저 바다에서 나를 구하기 위해 너는 네 목숨까지 걸었는데, 나는 너를 기억도 하지 못한 채 보내버리고 말았다. 돌아오는 기억들이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나를 찌르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채 바다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아직 공기 중을 떠도는 물거품을 손가락 끝으로 눌렀다. 누른다는 말을 사용하기 민망할 정도로 힘없이 터져버린 물거품은 아주 작은 물방울로 흩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너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나를 지켜보고 있을 수도, 내가 너를 보고 있을 수도 없이 되어버렸다. 아. 정말 이 곳에는 네가 없구나.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달빛 아래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꿈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자신이 구한 왕자에게 첫 눈에 반한 인어공주는 마녀를 찾아가 자신에게 다리가 생길 수 있는 약을 달라고 했답니다. 마녀는 그 대신 공주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져갔고, 왕자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물거품이 될 거라고 말해주었어요. 자신을 구해준 이가 인어공주가 아닌 이웃나라 공주로 착각한 왕자는 그와 결혼한다고 했고, 진정으로 행복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인어공주는 결국 그의 마음을 포기한 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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